* 加劃原理
옛것에 임하여 새것을 창하는, 이른바 "臨故創新"의 書의 행위는
학문과 수양의 예술, 즉 "學養藝術" 이다.
이는 서법(중국), 서도(일본), 서예(한국)의 명칭에서 알수있듯
書法은 학문성, 書道는 수양성, 書藝는 예술성을 강조하는 말이기도 하니
墨客이 추구 해야할 올바른 서예는 이 學問과 修養을 겸전하는 藝術이라 할 수 있다.
이에 학문성의 측면에서 아무도 加劃의 문제점을 짚고 넘어가는 書家나 學者가 없는 바
훈민정음 초성의 加劃原理를 나름대로 고찰하여 작은 문제점을 짚어 보고자 한다.
훈민정음 해례본에는 "가획"을 "加畵"으로 표기 하였으나
"畵"과 "劃"은 통하는 글짜이니 편의상 "加劃"으로 표현 하였음을 아울러 밝힌다.
훈민정음 중성은 天地人 삼재의 이치인 인체의 頭足軀를 본뜬 상형자 "ㆍ ㅡ ㅣ"를 기본자로 삼아
초임(初姙), 재임(再姙)의 이치와 같이 초출자를 만들고 다시 재출자를 만들었다.
※ 三才는 단순히 하늘,땅,사람을 가리킴이 아니라, 二氣(陰陽)의 相合으로 萬物이 生成하는 이치를 말함이다.
그러나 이체자를 제외한 초성은 木火土金水 오행의 이치인 발음기관의 牙舌脣齒喉를 본뜬
"ㄱ ㄴ ㅁ ㅅ ㅇ"의 상형자(기본자) 위에 획을 더한 가획자, 즉 加劃의 原理로 만들어 졌는데,
"加"의 字義를 정확히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加"자에는 더하다의 "增과益", 합하다의 "合", 붙이다의 "著"등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글짜로
더하다, 합하다, 붙이다의 의미를 미루어 고찰해 볼때
加劃에 있어 "加"는 "더하여 합쳐진 하나로 이어져 뭉쳐진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런데 많은 書友들이 正字體는 차치 하더라도 훈민정음 반포당시의 판본을 본받은 글씨
즉, 古體(판본체,정음체,반포체등)에서 조차 이 가획의 원리를 정확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것 같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고체에서 "ㅎ"을 씀에있어 대부분 (3)과 (4)의 형태로 쓰고 있으나,
간혹 초학자나 또는 書歷이 오래된 서가들 중에도 (1)과 (2)의 형태로 쓰는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훈민정음 초성의 가획원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쓰는것이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ㅎ"의 제1획은 "점획"도 아니요, "횡획(가로획)"도 아닌, 오로지 "종획(세로획)"이기 때문에
(1)과 (2)의 형태는 분명 잘못된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3)과 (4)에서,
제3획인 "ㅇ"을 제2획인 "ㅡ"에 붙여써야 하는가 아니면 떨어지게 써야 하는가의 문제이다.
국보 제70호인 훈민정음의 例義에는 완전히 떨어져 있고, 解例에는 대부분 붙은듯 떨어져 있다.
또한, 용비어천가에는, 붙어 있기도 하고, 떨어져 있기도 한 것을 살펴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학문적인 예술을 논함에 있어, 하나의 原理原則에 입각하여 생각해 보아야 한다.
"ㅊ"도 "ㅎ"과 똑같은 이치로 가획의 원리에 의해 만들어진 글짜이다.
그런데 "ㅊ"의 제3.4획인 "ㅅ"은, 제2획인 "ㅡ"에 항상 붙여쓰고, 또한 다른 가획자 모두는 붙여 쓰면서
유독, "ㅎ"의 제3획인 "ㅇ"은 제2획인 "ㅡ"에 매양 떨어져 있게 쓴다면,
어떤것은 붙고, 어떤것은 떨어지고, 이것은 원리원칙이 없는 無原則이요, 語不成說 이다.
有錢無罪 無錢有罪란 말도 있지만
한 나라의 법의 잣대가 이랬다 저랬다 한다면 어디 그 나라가 제대로된 법치국가라 할 수 있겠는가?
훈민정음 板下의 板書者가 세종의 세째아들인 안평대군 "瑢"이었지만
세종임금도 이부분에 있어 좀더 주밀하게 살피고 신중 했어야 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물론 "ㅇ"이 "ㅅ"보다 "ㅡ" 아래에 붙여 쓰기가 다소 애매하고 모호하다.
"ㅇ"은 하나의 획이기 때문에 한번에 쓰는것이 원칙으로,
"ㅇ"을 오른쪽 아래에서 시작하여 시계 방향으로 돌려쓰면 "ㅡ" 아래에 붙여쓰기가 어려워
나는 위에서 시작하여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려 쓴다. (그래도 간혹 떨어질 때가 있다)
생각컨대 어린 아이들이 손글씨에서 "ㅇ"을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리는 것을보면
시계 방향으로 돌려 쓰는것은 순리가 아닌듯 싶다.
나는 天地가 하나이고, 心身이 하나이듯, 예술과 실용은 한몸 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견지한다.
그런데 가끔 텔레비젼을 보다가 눈살을 찌푸리곤 하는데,
모 방송사의 "형님뉴스"라는 개그프로로, 요즘은 바뀌었지만 얼마전 까지만 해도
"형"자의 "ㅎ"이 (2)와 같은 형태의 타이틀로 되어있었고,
또한 국영방송사인 대하 역사드라마 에서 조차 스텝과 배우들의 이름을
드라마 시작에 앞서 자막에 올림에 있어 (1)과 같은 형태의 점획으로 된 글짜체가 보일때에는
심기가 불편하여 눈살이 찌푸려지고 자못 한심하기 그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처지에서 살펴본다면 관공서나 기타 일반에 사용되는 여타의 글짜체 또한 하등의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일차적으로 그러한 글짜체를 개발하는 사람의 無知가 원인이 되겠지만,
字體라고 해서 아무렇게나 함부로 선정하여 사용 해서는 아니 된다고 본다.
왜냐하면 방송사나 정부의 공공기관에서 선정한 字體가 가지는 파급성과 공공성은
"ㅎ"을 요즘 대부분의 일반 사람들이 (1)과 (2)의 형태로 쓰고, 그것이 올바른 것으로 착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찌보면 이러한 잘못된 글짜가 자리잡게 된것은 굴절된 우리 서예사 때문이라고 본다.
훈민정음, 용비어천가 부터 "ㅎ"의 제3획 "ㅇ"이 제2획 "ㅡ"에 정확히 붙어있지 않아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고,
또한, 여사서와 같은 판본류를 거치며, "ㅎ"의 제1획인 종획(ㅣ)이 (6)과 같은 縱點의 형태로 발전 했어야 하는데,
橫劃과 橫點으로 변질되기 시작하여 궁중 여인들에 의해 발전한 옥원듕회연 등에서는 완전한 橫點으로 정착하였으며,
다른 획들과는 달리 제3획인 "ㅇ"이 획의 변화없이 그대로 쓰였고, 제2획과 제3획의 "ㅡ"와 "ㅇ"이 완전히 분리되어,
(5)의 형태로 고착화하여 오늘날 이러한 글씨를 범본삼았기 이러한 폐단이 연원 되었음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이제 마지막 결론을 짧게 내리면,
가획의 원리에 의해 만들어진 훈민정음 초성자는
고체에 있어 (4)의 "ㅎ"과 같이 하나로 이어지듯 반드시 붙여써야 하고,
(6)과 같은 "ㅎ"의 형태가 정자체의 올바른 표현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왜냐하면, "1+1+1"의 정답은,
"1+1+1" 보다도,
"2+1" 보다도,
"3" 이라는 숫자 하나가 더 정확하고 명확한 해답이기 때문이다.
--- 무자 하지절 용추산방 쥔 석담 최형식 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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